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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가복음5:21-34 믿음대로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믿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믿음'을 나타내는 방식은 각자 다르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믿음' 입니다.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번째는 야이로라는 사람과 두번째는 12년간 혈루증으로 고통받았던 한 여인입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습니다. 회당은 단순히 모여서 예배드리는 장소가 아니라 학교의 기능, 사회적인 통합의 기능, 재판소의 기능, 법적인 권위를 가진 곳입니다. 한마디로 회당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입니다. 그 곳의 '장'으로 있는 사람이 야이로입니다. 그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야이로가 가진 믿음..
마태복음 5:1-6 반석 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6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 ① 반석 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 여섯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복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까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눈물의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1. 배고픔과 목마름 - 갈망 오늘 말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의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주리고 목마른 상태를 갈망이라고 합니다. 이 갈망은 참을 수 있을만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아닙니다. 냉장고를 열면서 뭐~먹을 거, 마실 것 없어? 출출한데... 이런 배고픔과 목마름이 아닙니다. 갈망은..
마가복음3:7-19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예수님께 나아간다고 다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다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찬양하고 기도한다고 다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해 어떤 태도로 나아가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예배드리는지, 예수님에 대해 어떤 자세로 찬양하고 기도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먼저 잘못된 동기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온 땅에 퍼지니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7-8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유대,예루살렘, 이두매, 요단강 건너편, 두로와 시돈에서, 즉 이스라엘 전국에서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 크고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
마가복음 2:23-3:6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 미국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콜롬비아대학 학장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날 한 학교 교직원이 학생들을 무더기로 징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학생들이 '출입금지'라고 쓰여진 잔디밭에 들어가서 잔디를 훼손했다는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는 그 잔디밭에 직접 가보았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 잔디밭의 넓이가 상당히 커서 가로질러 가지 않으면 수업을 받기 위해 엄청난 거리를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출입금지 푯말을 치우고 학생들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드시오"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잔디입니까? 학생들입니까? 학생들이 더 중요하고, 학생들을 위한 생..
마태복음 5:1-5 반석 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5 온유한 사람 우리 주먹 한번 쥐고 힘차게 시작해 볼까요? 은혜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은혜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은혜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은혜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반석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 다섯번째 시간. 오늘은 온유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항상 생각하십시오. 사회통상적인 개념의 단어와 기독교의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꼭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분하지 않고 세상의 개념을 그대로 교회에서 사용할 때, 교회가 점점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갑니다. '온유' 라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사회,세상에서의 뜻과 교회, 하나님 나라에서의 뜻을 구별하세요. 사회, 세상에서는 "사람의 표정이나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움" 이라는 뜻입니..
마가복음1:14-28 예수님의 권위 앞에. '권위'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 참 권위적이더라" 이런 느낌으로 많이 쓰여지죠? 권위라는 말이 부정적인 느낌이 들 때는 사람에게 쓰여질 때입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이 큰 힘과 능력, 그리고 위엄을 가지신 하나님의 권위는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일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권위 앞에 어떤 좋은 일이 있었을까요? 1.예수님의 권위있는 부르심에 순종하여 제자가 됩니다. 16절부터 20절까지는 바닷가에서 고기잡던 어부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고기잡던 어부들을 부르셔서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시고 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